해외여행의 묘미는 단순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진짜 여행은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시작된다고 믿기에 내가 캄보디아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장소도 그랬다. 바로 ‘시장’이라는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캄보디아 시장'과 '쇼핑 명소'라는 키워드는 단지 물건을 사는 곳을 뜻하지 않으며 그곳은 삶이 굴러가는 현장이며, 문화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골목이고, 때로는 여행자의 감정을 흔드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프놈펜의 복잡한 도시 속 시장부터 시엠립의 관광지 주변 야시장, 그리고 관광객이 잘 모르는 로컬 마켓까지, 나는 시장을 따라 캄보디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발로 누빈 시장과 쇼핑 명소들을 내 경험과 함께 풀어내려 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단지 정보를 넘어, 한 장면처럼 기억될 수 있는 장면들을 전하고 싶다.
프놈펜의 러시안 마켓, 그곳의 손길이 전한 감정
프놈펜 중심에 자리한 러시안 마켓은 현지명으로 뚤뚤음뿌옹이라 부르며, 외국인 여행자에게는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보다 ‘러시안 마켓’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게 들리는 이유는, 예전에 이곳을 주로 찾던 외국인들이 러시아계였기 때문이라 한다. 나는 이 시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말 그대로 압도당한 기억이 있는데 사방에서 펼쳐지는 원단의 바다, 수십 개의 기념품 상점, 타는 듯한 열기와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스피커 음악이 어우러져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10분 정도 시장을 걷고 나면 이 혼잡함조차도 어느새 익숙해진다.
시장 내부에는 실크 스카프와 나무 조각품, 향신료 세트, 은세공 악세사리 같은 수공예품들이 가득하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맞춘 상점도 있지만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가내수공업 가게들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중 한 가게에서 작은 목각 코끼리를 하나 샀는데, 상인은 내가 고른 모양을 보고 “행운을 부른다”고 말하며 웃어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 하나로 시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이후부터는 상품을 고를 때 가격보다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고, 그것이 시장을 즐기는 방식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시엠립 올드 마켓, 시간과 냄새가 얽힌 공간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서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은 바로 프싸 짜(Psar Chaa), 영어로는 '올드 마켓'이라 불리는 곳이다. 아침에 가면 채소와 과일, 고기와 생선이 어우러진 진짜 ‘시장’의 풍경이 펼쳐지고, 점심 이후부터는 기념품과 의류, 공예품들이 전면에 나선다. 나는 하루는 오전, 하루는 오후에 이 시장을 찾았는데, 전혀 다른 장소를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아침의 시장은 습한 공기와 강한 생선 냄새, 상인들의 분주한 손길이 뒤섞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오후의 시장은 관광객과 웃음을 주고받는 상인들, 흥정 끝에 손에 쥐어진 값진 물건 하나가 따스한 기억으로 남게 했다. 시장 한편에서 만난 할머니는 내게 전통 방식으로 염색한 스카프를 권했고, 나는 그 색감이 마음에 들어 선뜻 구매를 결정했다. 집에 돌아와 그 스카프를 펼쳐보며 그날의 햇살과 시장의 냄새, 그리고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함께 떠올랐으며 물건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그래서 나는 시장에서 산 것들은 가격보다 장면을 먼저 기억하게 된다.
시엠립 나이트 마켓, 낭만과 활기로 물드는 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시엠립의 분위기는 또 다른 옷을 입는데 특히 나이트 마켓이 문을 여는 시간대가 되면, 도시는 여행자를 위한 무대처럼 변모한다. 조명이 반짝이는 상점들이 도로를 따라 길게 펼쳐지고, 조용한 음악과 거리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마치 축제에 온 듯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나는 한여름 밤, 아무런 계획 없이 시장을 거닐다가 손으로 조각한 나무 목걸이를 파는 상점을 발견했는데, 그중 한 점은 꼭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을 만큼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상인은 제품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며, 어떤 디자인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말해주었고, 나는 그 설명이 마음에 들어 하나를 골랐다. 쇼핑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이라면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이트 마켓은 그런 감정을 자주 자극한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조명, 손으로 만져지는 물건들,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두가 감정의 일부가 되고, 결국엔 ‘좋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
기념품 이상의 가치, 캄보디아의 사회적 쇼핑 공간
시장 이외에도 캄보디아에는 관광객을 위한 정돈된 쇼핑 공간들이 존재하지만만 내가 추천하고 싶은 곳은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나 예술가들의 작품이 모인 공간이다. 예를 들어 시엠립의 'Artisans Angkor'는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지역 청년들에게 전통 공예 기술을 가르치고 직업을 제공하는 역할까지 해낸다. 나는 이곳에서 하나하나 손으로 짠 실크 스카프와 전통 문양을 담은 조각품을 천천히 둘러봤다. 가격은 시장보다 조금 높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안 뒤로는 오히려 합리적인 소비라고 느껴졌다.
사회적 쇼핑은 소비를 통해 여행지를 돕는 방식이기도 하고, 보다 지속적인 여행 문화를 만드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무심코 사는 기념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한 끼 식사이자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쇼핑이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구입한 나무 액자 하나는 아직도 내 책상 위에 놓여 있고, 그 앞에 앉을 때마다 그날의 마음이 떠오르곤 한다.
낯선 시장에서 마주친 따뜻한 순간들
나는 여행 중 쇼핑에 큰 비중을 두는 편은 아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자꾸 시장을 찾게 됐다. 단순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사람들과 공기와 소리를 다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미소와 손짓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도 시장 덕분이었다. 어떤 날은 시장 입구에서 아기 업은 상인이 아이 손을 흔들게 해 나를 웃게 만들었고, 또 어떤 날은 한 상인이 손수 싸준 과일 봉지를 나눠주며 “친구에게”라고 말했다. 이처럼 예상하지 못한 친절과 따뜻함이 시장이라는 공간에 스며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캄보디아 시장이 주는 가장 큰 가치라고 느꼈다. 쇼핑은 그저 소비의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교류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운 시간이었다.
캄보디아의 시장과 쇼핑 명소는 그 자체로 화려하진 않지만,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결이 있었고, 진심이 묻어나는 손길이 있었다. 관광지의 정돈된 풍경 뒤에는 이런 진짜 모습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곳에서 물건보다 사람을 보고, 가격보다 감정을 샀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언젠가 캄보디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호텔 앞의 큰 몰보다는 구불구불한 시장 골목을 한 번쯤 걸어보길 바란다. 쇼핑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 골목 끝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과 감정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